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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선교사

[선교사이야기] [Mission Story][병원 사도직]"1초의 순간 속의 영원"_Sr. 손선주 플로라, MSC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2-20 조회조회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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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근무였다. 나의 직책은 책임간호사였고, 간호조무사 1명, 요양보호사 2명과 47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저녁 식사 전 환자분들 컨디션 변화를 살피기 위해 병실 라운딩을 하던 중 할아버지 한 분이 불안한 모습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환자분은 팔순을 넘긴 방광암 진단받은 분으로 그간 여러 번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셨다. 그간 혈뇨가 지속되어 간호사실 근처 침상으로 옮긴 후 주의 깊게 살피던 시기였다. 환자분은 코에 꽂은 산소 줄이 불편하다고 간호사의 권유에도 늘 빼놓고 계셨다. 그날도 그랬다. 코에 산소 줄을 빼놓고 이리저리 뒤척이셨다. 나는 재빠르게 산소줄을 코에 꽂아 드리고, "절대로 빼시면 안 돼요! 빼면 큰일 납니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고 함께 근무 중인 간호조무사에게 Vital Sign(활력징후)을 체크해 달라고 부탁한 후 다른 병실 라운딩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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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라는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 그날이, 내가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처음 맞은 임종이었다.

간호조무사의 보고에 의하면  Vital Sign은 정상이라고 했다. '별일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직감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별다른 징후는 없는데 환자가 왜 안절부절못하지? 뭐가 문제지?' 다시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다. "SpO2(산소포화도)는 얼마예요?" "그거는 체크 안 했는데, 할게요" 라며 환자에게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바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복도 밖으로 들려왔다. "선생님 환자가 이상해요. SpO2 체크가 안 돼요." 급히 달려간 나는 환자의 동공과 의식 상태를 사정했다. 동공 반응이 없었고, 의식은 Coma로 가고 있는 듯 보였다. 간호조무사에게 당직 의사 호출 및 응급 물품 등 몇 가지 지시를 내렸고, 나는 담당의와 통화를 하면서 환자 상태 보고 및 여러 징후를 확인하였다. 몇분간의 긴급한 상황 속에서 환자분은 눈을 감고는 숨을 거두셨다. 그 시간 병실에는 저녁 식사가 들어오고 직원들은 배식하고 환자들은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당직 의사는 임종과 관련한 몇 가지 사정 및 조치를 하는 동안에도 병실의 환자들은 그 순간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식사하셨다. 그 순간이 사진 찍히듯 한 장면으로 캡처되어 내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모두의 1초라는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숨 하나에 누군가는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고,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는, 아이러니하지만 그 짧은 순간도 모든 것이 우리 생의 일부였다. 그날이 내가 요양병원에 근무하고 처음 맞은 임종이었다.


간호학과 3학년 때 한 대학병원으로 커대버(해부학 실습에 사용하는 시체)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모두가 경험해 보고 싶어 했지만, 소수만이 참가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넓은 강당에는 포르말린 냄새가 뇌 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코를 통해 강하게 들어왔고, 군데군데 여러 구의 커대버가 놓여 있었으며, 설명을 도와주는 몇몇 조교 선생님들이 서 계셨다. 몇 가지 안내를 듣고 복장을 갖춘 뒤 커대버 앞에 섰다. 우리는 종교를 떠나서 시신을 기증해 주신 분들을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갖고, 본 수업이 시작되었다. 해부의 주요 컨셉은 근육층을 확인하면서 진행되었고, 뇌의 구조, 소화기계, 혈관계의 동맥과 정맥을 보면서 만져도 보고 그를 통해 느껴지는 질감, 탄력성 등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교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같은 육체를 지녔으나 누군가에게는 숨이 있어 생명이 느껴지고 살아있으나, 침대에 누워있는 다른 육체는 숨이 빠져나가 텅 비어있는 그 자체였다. 살고 죽는 것이 숨 하나에 달려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한 순간이었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 2,7) 숨결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은 숨결이 빠져나간 텅 빈 육체를 보면서였다. 없는 것을 통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있고 없고라는 1초의 순간이 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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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영원의 순간에 환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노인병원이나 호스피스 병원의 간호사들이 겪고, 공감하는 두려움 중 하는 임종이다. 환자가 평온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라면서도 그 순간이 내 근무 때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임종은 환자가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준비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외롭지 않도록, 두렵지 않도록 손을 잡아드리고 동반하고픈 마음이었으나 현실은 생각과 다르게 많은 시간을 내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사후간호를 마치고 주모경과 성요셉께 바치는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드리며 귓속에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히 쉬세요."라고 짧은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영원의 순간에 환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것은 모두에게 똑같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는 하느님 말고는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고,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어쩌면 임종의 순간을 통해 우리가 서원한 순명, 가난, 정결이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진실하게 고백하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하느님만이 전부이며, 하느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출처_2023년 제52호 「새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