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성소이야기] MSC와 함께 한 은총의 여정 4_Sr. 김희식 데레사, MSC
본문
양성장 소임은 어려웠지만 연구와 공부를 하면서 해냈었다.
1986년 지부장 임기를 마치면서 나는 2년 동안 청송에서 본당 사도직을 하는 젊은 수녀들과 매주 목요일 감호소를 방문하였다. 그 후 1년 마닐라에서 지내고 귀국한 후 나에게 맡겨진 임무는 양성이었다. 처음에는 유기서원장, 수련장 그리고 종예반 수녀들을 동반하였다. 마지막으로는 마닐라 국제 양성소에서 중국과 베트남 지원자 5명을 동반하였다. 최근에는 영신수련 피정을 하는 수련 자매들을 동반하였다. 깊은 신학이나 영성, 심리학에 대한 지식도 없는 나로서는 어려운 소임이었다. 그러나 수도회 역사, 카리스마, 영성, 그 외 다른 서적들을 읽고 연구하며 필요한 부분을 공부하면서 해냈다고 생각한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운 체험도 많이 했다. 종예반 수녀들과 수련 자매들이 영신 수련 때 나누었던 깊은 체험들과 현장실습을 통한 체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은총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수련 자매들과 청송 감호소에 가서 위문 공연을 했던 일이다. 감호소 강당에 들어설 때, 재소자들과 자매들은 잔뜩 긴장하고 굳은 표정이었다. 자매들의 합창, 특히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연극이 공연될 때는 굳어있던 재소자들의 표정이 어느새 환한 얼굴이 되었다. 또 큰 웃음과 박수갈채로 모두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치 형제자매인 양 함께 즐거워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마음을 찍는 사진기'와 '어린왕자' 공연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청송 감호소 공연 모습 / 종신서원 수녀들과 함께_with 고 정명조 주교님
총참사로서 총원에서 보낸 6년의 시간에 감사드린다.
1996년 나는 총참사로 선출되었다. 비서구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관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였으리라. 각오는 했지만 쉽지 않은 직책이었다. 언어, 문화, 사고방식이 다를 뿐 아니라 한국 관구와 총원과의 연락이나 번역 외에는 참사로서의 뚜렷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자존심이 상처받고 외로움이 몰려왔다. 쉼 없는 연속 회의도 한국인에게는 힘겨웠다. 그러나 그 기간이 나에게는 구체적으로 국제 수도회 체험을 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국제회의, 각 지부와 관구 방문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나 자신이나 재속회 강의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곳 의료보험이 없는 상황에서 건강하게 6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