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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선교사

[나의성소이야기] [Vocation Story] Sr.조안나 아니따, MSC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0-22 조회조회 3,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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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전례 중에 독서하는 아니따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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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커서 신부나 수녀가 되고 싶은 사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부모님을 통해 신앙생활을 받은 나에게 하느님은 새롭게 알아가고 믿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있듯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존재였으며 성당이라는 곳은 집만큼 익숙한 공간이었다. 성장하는 동안 학교 친구가 동네 친구고, 동네 친구가 성당 친구인 환경에서 많은 관계와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본당 신부님, 수녀님들 또한 친숙한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를 포함한 친구들)는 나중에 다 신부님, 수녀님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2 여름신앙학교 미사 중에 신부님은 “여기에서 나중에 커서 신부나 수녀가 되고 싶은 사람?” 이라는 질문을 던지셨고, 제일 앞에 앉아있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미사 후에 신부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로 부르셔서 “내가 이렇게 물었는데,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안나 혼자만 손을 번쩍 들었어요! 저도 기도 할 테니, 잘 키우셔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교중미사 강론 중에 다시 한 번 우리 성당에 수도성소를 갈망하는 9살 아이가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해주셨다.-_-;;

그 후로 성당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나만 보면 “너로구나!” 하시면서 ‘기도하고 있다. 꼭 수녀님이 되어라.’ 라고 말씀하시고, 만나는 신부님, 수녀님들로부터도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지 말고, 수녀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며 진담 반, 농담 반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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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그렇게 성소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입회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막상 고3이 되자 그래도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남들 다하는 대학교 신입생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딱 1년만 다니고 입회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대학에 가게 되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좋아서 했던 공부와 일이었기에 좋은 기회와 성과도 얻게 되면서 점점 수도성소는 마음 저 깊은 곳에 묻어둔 채 대학원을 어디로 갈 것인지, 어느 직장에 취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선택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던 중에 정말 우연히 젊은이 피정에 가게 되었다. 축제라 생각하고 신나서 갔던 그 피정은 관상기도를 하는 침묵피정이었고, 집에 돌아갈까 망설이다 머무르게 된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 침묵 중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새롭게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 분을…, 지금까지는 부모님을 통해서만 만났던 하느님이라면 이제는 내가 마주하고 관계 맺어가야 할 나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편 46장 말씀처럼 ‘내 삶을 멈추고 하느님을 알아야 하는 때’를 그 분께서는 그렇게 나를 그곳으로 부르시어 마련해 주셨다. 피정 담당 신부님께로부터 좋은 씨앗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수도성소에 대한 말씀을 다시 듣게 되었지만 그 때 나의 느낌은 이미 나는 수도성소로부터 너무 멀어져버린 것만 같았다. 돌아온 후에 계속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 보다 빠른 승진과 연봉, 주변에 사람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것들이 ‘나’는 아닌데… 나를 지칭하는 많은 사회적 명함들이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참 나'는 도대체 뭘까?", "하느님은 어떤 목적으로 나를 만드셨을까?" 하는 질문들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그 채워지지 않는 허함은 하느님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아마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두려웠지만 조심스레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을 때, 하느님께서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이끄시고, 이루어주셨다. 오늘이 있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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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꽉! 붙들린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입회에 대한 확실한 응답이 있던 날 하느님께 꽉! 붙들린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섭리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나의 온 삶에 걸친 하느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은 신비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살아가고 있는 현재도 그렇듯이.

가끔 성소자들을 만나면 ‘하느님이 좀 더 확실한 부르심을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가 망설임 없이 입회 할 텐데’ 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럴 때 나는 내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며 하느님의 부르심과 나의 응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떠올라 그저 미소만 짓게 된다. 그 부르심은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 의식하게 되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그리고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만 하느님께 보인다면 그 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하느님의 길 위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은총과 축성생활을 통해 누리게 되는 사랑 받는 죄인의 기쁨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또 많은 성소자들에게 허락되어지기를 기도드리며….

성심의 사랑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내 작은 성소 이야기가 또 하나의 씨앗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