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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선교사

[나의성소이야기] [My Vocation Story]_Sr. 김경량 글리체리아, MSC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9-14 조회조회 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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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성소…’라는 말을 듣거나 접할 때면 문득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짐짓 숙연해 지기도 하며 지금처럼 저의 사소하지만 저만의 고유한 부르심의 이야기들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 수도 성소를 마음속에 두고 열망하며 기도 드렸을 때, 나에게는 그리 특별한 계기나 섬광처럼 강렬한 선택의 경험은 없었다. 다만 수도회 입회를 결심했을 때, 나는 다른 수녀님들보다 조금은 이른 나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나로 하여금 남은 공부도, 사회생활도, 세상이 주는 또 다른 경험도 뒤로 하게 되었을까…? 되돌아 보며 혼자서 웃기도 하면서 마음과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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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신앙을 통해 알게 된 하느님


‘외할머니, 엄마, 명인 소아과, 수성 성당, 상동 성당, 청년회, 2000년 대희년, 본당수녀님들…’ 이런 단어들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이 스친다.


어릴 적 종종 아버지를 따라서 예수성심시녀회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식당에 가거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님들이 판매하시는 백합 메주를 사러 남산동 수녀원에 가곤 했던 기억들은, 수녀님들의 모습을 제 삶의 한 부분에 크고 작게 스며들게 했다. 그 중에서도 제가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외할머니의 신앙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귀한 딸 들 중 하나인 저희 어머니와 두 이모 모두 청각장애를 안고 자랐고 딸들의 그런 고통이 할머니에게는 평생의 무거운 십자가였다. 모태 신앙이 아니셨던 할머니께서 자녀들의 이유 모를 고통으로 인해 하느님을 찾으셨고, 하느님 품에 안기실 때까지 딸들의 치유를 청하며 기도로 매일을 봉헌하셨다. 어릴 적 늘 무릎 꿇고 성모님께 기도 드리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지만 그 때는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할머니께서 얼마나 아프셨는지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엄마를 대신해서 어릴 적 나와 동생을 데리고 소아과를 자주 다니셨는데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꼭 성당에 들르셔서 저희 둘을 앉혀 놓으시고는 엄마와 이모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내가 빨리 가자고 조르면 조금 더 있어야 엄마가 낫는다고 말씀하시며 토라진 나를 업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할머니의 고통, 엄마와 이모들의 아픔, 다른 가정과는 조금은 다른 가난함이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었고 신앙이라는 은총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가끔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할머니께서는 자주 "경량이를 잘 키우면 좋은 일이 돌아온다" 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그게 아마 수도자로 봉헌하라는 뜻인가 싶다’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는데, 그럴 때 마다 저는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기곤 했다. 하지만 분명 나의 성소라는 작고 연약했던 씨앗은 그런 고통과 가난함에 뿌리내렸고 그 만큼 더 큰 하느님의 축복으로 지금껏 튼튼히 자라는 중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의 ‘매일의 성소’ 는 각자가 다른 고유한 방식으로 불리움 받고, 매순간 성장한다.


내가 일곱살 때, 할머니의 모습을 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지금은 그 때 그 날의 할머니의 모습과 마음을 지닌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나의 성소를 매일 성장시키고 있다. 나의 작은 성소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고 감사드릴 수 있도록 이글을 부탁하신 수녀님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저를 눈 여겨 보시고 사랑해 주셨던 하느님의 부르심에 감사드리고, 저에게 신앙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물려 주신 외할머니와 어머니께도 감사드립니다.



Image_필리핀 선교지에서의 글리체리아 수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