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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선교사

[선교사이야기] [Mission Story][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그리움"_Sr. 홍성경 소화, MSC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7-30 조회조회 4,914

본문


그리움 Ⅰ


네가 품고 간 한겨울 추위는

눈꽃으로 피어나

빛이 되고 이내 그리움으로 반짝인다.


네가 남기고 간 너의 온기는 

황새냉이꽃이 되어  내 가슴을

하이얀 봄날로 물들인다.


네가 흘리고 간 눈물 자리는

수만 개의 별 무리가 되어 

칠흙 같은 세상으로 쏟아진다. 

이내 한 줄기 빛으로 피어난다.


네가 수놓고 간 웃음자리는

따뜻한 바람이 되어

내 가슴을 쓸고 간다.

한 톨의 관용조차 모르는 겨울 말고

체온이 따뜻한 어느 봄날


한 송이 꽃으로 다시

피어나길 바래.

이름 없는 풀꽃으로라도 좋으니…

 

「따뜻한 작별」中 “어느 봄날 한 송이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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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꽃으로 다시피어나길 바래. 이름 없는 풀꽃으로라도 좋으니…



나는 위의 시를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에서 발간한 자살유가족의 글모음에서 만났다. 처음 이 시를 접하면서 머리가 멍하고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지은 이름도 모르는 유가족의 마음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어느 날, 이름 없는 풀꽃으로라도 좋으니…’ 그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자살예방센터’는 듣기에도 부담스럽고, 말하기도 부담스러운 소임지이다. 내가 입으로 말하기도 때로는 주저되는 곳이니, 우리에게 연락을 해오는 분들은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걷어내며 용기를 내는 것일까… 그저 감사할 뿐이다.

때로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데, 어찌 유가족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으리오. 두려움·떨림·긴장 등 교차되는 수많은 감정을 감추면서, 내가 그들을 만나 대화하고 위로해주는 모습에도 그저 주님께 감사 드릴뿐이다.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삼아 일하시는데도 인간적인 나의 모습은 한없이 두려움에 갇히게 된다. 이때마다 “예수성심은 온 세상에서 사랑 받으소서”라고 수없이 되뇌이며, “저는 그저 당신의 도구입니다. 오늘도 저의 두려움을 당신께 맡기오니 함께 해 주소서”라고 화살기도를 바치며 사무실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그리움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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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장기기증 봉헌자의 우대공간’ 나눔 자리에서 만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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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장기기증 봉헌자의 우대공간’ 나눔 자리가 명동성당 1898에 마련되었다. 故김수환 추기경의 큰 대형사진을 시작으로 그동안 장기기증을 한 이들의 이름이 벽면에 연대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김 추기경님이 돌아가신 2009년, 나는 예수성심전교 수녀회 부산 본원 식구들과 해운대에서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장기기증 봉헌자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가다 ‘임선화’라는 이름을 보았다.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리 회의 수녀님이신가라는 의문이 들어 직접 확인해보았다. 2009년 돌아가신 「예수성심전교 수녀회의 임선화 안구기증」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수녀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던 그 해에 본원에서 같이 지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덧 기억 속에서도 마음속에서도 잊혀지고 있던 수녀님을 ‘장기기증 봉헌자의 우대공간’에서 만나다니…, 기쁨이 커서일까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이별과 헤어짐의 아쉬운 눈물이 아니라 다시 만나는 부활의 기쁨으로 흐르는 눈물이었다. 임선화 엘리사벳 수녀님을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다. “한 톨의 관용조차 모르는 겨울 말고, 체온이 따뜻한 어느 봄날 한 송이 꽃으로 다시 피어나길 바래. 이름 없는 풀꽃이라도 좋으니…”


상실과 아픔,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의 동반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언젠가는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는 그분을 향한 긴 지상의 여정 속에서, 나의 수도생활은 정화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얼굴을 마주대고 보리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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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2020년 제49호 「새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