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이야기]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자살 유가족들을 동반하며"_Sr. 유명옥 마리아, M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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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몸에 종기가 나면 어머니께서는 이명래 고약을 구입하여 상처에 붙여주셨다. 며칠 후 빨갛게 성났던 부위가 부드러워지면서 만져도 아프지 않을 때, 어머니의 손길로 말끔해져 새살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자살 유가족을 만나는 나의 소임은 어머니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이하 센터)에서 유가족 돌봄 소임을 하고 있다. 처음 소임을 받았을 때, 한 번도 자살유가족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경험이 없었기에 두렵기도 하고 어떻게 동반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간절한 기도로 시작한 센터 소임이 어느덧 1년을 넘어 2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이곳 센터에서 자살예방캠페인, 자살예방교육, 찾아가는 마음돌봄사업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자살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들을 지키지 못해 죄책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자살 유가족을 동반하고 있다. 어린 시절 고약을 정성스레 붙여 주시던 어머니의 마음처럼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도하며 '슬픔 속 희망 찾기'를 한다.
우리 센터는 '유가족 미사'(월 1회 셋째 주 토요일)를 통해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며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난다. 그 안에서 함께 상실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와 봉헌의 시간을 가진다. 또 '도보 성지 순례'(월 1회 넷째 주 토요일)를 통하여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한다. 같은 슬픔을 겪는 이들이 일상의 대화와 기도를 하면서 서로 손잡아 주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다.
얼마 전 절두산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한강을 걸어서 새남터 성지까지 순례했던 어느 유가족의 소감문을 소개할까 한다.
[어느 해 가을 문턱에 서울에 와 30년 만에 처음 한강을 걸어봐서 너무 좋았다. 건너편 한강 양화지구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과 함께 자주 와서 놀던 곳이라 마음이 흔들렸는데 같이 걸어가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걸어준 자매님 덕분에 우울한 기분을 떨쳐냈다. 혼자서는 힘들지만 이렇게 함께하니 우울한 마음이 덜어지는 것 같다.]
[이번 도보 순례는 함께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새남터 성지로 가는 한강 변에 자리한 집에서 아이가 투신을 하였고, 고개만 들면 우리 집 베란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떠나고 나서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스럽다. 나는 아이가 힘들게 할 때마다 짜증 내고는 이 한강 변을 산책하였기에,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나서는 한강에 나와보지 못했다. 후회와 죄책감에 눈물 흐르지만 그래도 참석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
매년 있는 '자살 유가족 피정'에서도 치유 받는 강렬한 체험을 한다. 떠나간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상실의 고통에 직면하고 극복하는 신비로운 시간이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이사 43,19)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서 희망이 있는 새 일이 그들의 삶에서 완성될 것이다.
2023년 유가족 스스로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자조모임'이 시작되었다. 이 모임의 리더는 자살 유가족이다. 본인도 힘들지만, 용기를 내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애도 과정을 돌아보는 것이다. 자조모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그림책 모임',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마음 돌봄 모임', '명상 모임', '그림그리기 모임' 등을 사용하지만 주로 세상을 떠난 고인에 관한 이야기기를 진솔하게 나눈다. 어떻게 애도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지…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힘을 얻는다.
센터가 하는 것은, '치유가 슬픔을 잊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슬픔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슬픔의 경험과 함께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돌다리가 되어 주면서 말이다.
우리 수도회 창립자께서 말씀하셨던 시대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하는지 나는 오늘도 서로의 슬픔을 토닥이며 조용히 예수성심의 어머니를 불러본다.
출처_2023년 제52호 「새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