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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선교사

[선교사이야기] [Mission Story][제주교구 조천본당]"바다의 기도"_Sr. 고은영 모니카, MSC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12-14 조회조회 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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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파견받은 이로 살아가는 설렘과 긴장

 

제주도가 고향인 내가 제주로 파견 받았을 때, '고향이라서…, 제주라서 좋겠다.'라는 부러움 섞인 수녀님들의 인사말이 무색하게도 당혹감이 먼저 밀려왔다. 물론 아프신 어머니의 가까운 곳에 있게 되어서 좋기도 하고, 욕심이지만 아름다운 제주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겠다는 사치스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파견 받은이로서 가져야 할 비장함은 부족했다. 고향에서 배척받으셨던 예수님의 선체험이 간접 경험이 되어서 그런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어느새 고향으로 향하는 편안한 설렘은 사라지고 사도직 현장으로 향하는 긴장된 설렘이 나를 떨게 만들면서 익숙한 장소, 친근한 제주 사투리도 낯설게 느껴지는 미시감 현상이 일어나 바보가 되는 느낌도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조금 떨어져 제주를 바라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늘 보고 자랐는데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이 새삼 감사했다. 사람이 많아지고 건물과 길이 들어서면서 환경이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제주는 아름답다. 제주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한라산은 중턱까지 기어 올라오는 집들과 길 위의 차들을 받아안으면서도 여전히 상큼한 공기와 맑은 식수를 내어주고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종잡을 수 없는 하늘은 쌍둥이 바다와 함께 서로 경쟁하며 푸르름을 발산하다가도, 비바람을 쏟아내는 하늘이 되면 바다는 흰 이를 드러내며 밀려오는 잿빛 파도로 자신을 정화시킨다. 스스로 살아있는 제주의 매력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목적이 무엇이든 제주에 머물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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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연과 사람들은 

평범한 나의 일상에 역동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도록 이끈다.

 

제주의 바다에서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갇혀 있는 감옥 같은 느낌에 답답하고 우울하다고도 하지만, 저 너머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어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 희망이 꺾여 실패했을 때, 바다는 원망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제주의 바다는 그렇다. 어머니와 같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참혹함, 편안함, 비겁함, 잔인함, 세상에 쏟아내는 수많은 감정을 모두 받아들인다. 때론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힘없이 제주의 바다를 찾았다가 제주 바다의 매력에 다시 힘을 얻곤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가 지친 상태에서도 병색이 짙어져서도, 보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헤어진 연인을 잊어보려 잠깐 들른 제주에서 일주일만 있다가 가자 하던 것이 한 달이 되고 , 한 달만 하던 것이 일 년이 되면서 '제주살이'. '한달살이', 일년살이'라는 여행문화가 되어 제주는 기착지가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여행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아이들의 초등교육을 자연과 함께 건강하게 시키고 싶은 젊은 부부들의 건강한 생각이 변두리 시골 마을에 영향을 주었다. 점점 노령화되어 사라질 위기에 있던 마을들과 폐교가 되었던 학교들이 젊은 부부들의 유입으로 리폼되기 시작하면서 인구수도 늘어나고 생기 넘치는 곳으로 바뀌어 가는 게 사실이다. 내가 있는 조천이 바로 그런 곳이다. 성당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도심의 큰 성당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고 활기넘친다. 학교 등하교는 물론 미사에도 부모님 차로 오고가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초중등교육을 마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위한 다른 방법의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조천성당은 유일하게 아름다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제주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김기량 펠릭스베드로를 기념하는 길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순례객과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처음 오는 사람들보다 여러 번 다시 찾는 이들이 많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좋은 관광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쳐서 위로받으려고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어린 아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평소 아들이 좋아했던 제주의 산과 바다를 눈물로 걷는 부모, 항암치료를 마치고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러 왔다가 한 달째 머무는 이들도 있다. 성모상 앞에서 눈물만 흘리다 도망치듯 가버리는 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모를 모시고 온 딸, 제주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아와 기도하시는 분들…, 우연히 만나 이들의 사연을 듣게 될 때면 위로의 말도 미안해져서 함께 울기만 하기도 한다. 

성모상 앞에 켜놓은 봉헌 초와 미처 접어놓지 못한 성당 안 무릎 장궤, 그들이 떠난 텅 빈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응원의 기도를 포갠다. 팬데믹을 지내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지고, 비움의 시간이 있기에 커져만 가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 소외된 이들의 삶을 위해 조용히 기도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세상과의 소통(병으로, 실패로 그외 여러가지 이유로 단절되어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기도이다. 나의 매일은 평범하지만 그들을 통해 충분히 역동적으로 예수님을 만난다. 잔잔했던 바다가 수없는 백파를 일으키며 밀려온다. 수많은 사연을 파도에 실어 바다가 기도한다. 


출처_2022년 제51호 「새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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